▲ 김법혜 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바로 고향이다. 가족, 이웃과 어울려 지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한국인에게 고향은 뼛속 깊이 박힌 본질적 정서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다 보면 고향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유년기의 아련한 추억들이 있기에 성년이 되어도 고향을 갈 때마다 마음이 들뜨고 설레기까지 한다. 이런 고향이 머지않아 사람이 없기에 점차 사라질 판이 돼 서글퍼진다. 그래서 지역소멸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농촌의 쓸쓸함은 분명하게 우리 고향이 소멸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래서 정부가 착안한 것이 '고향사랑기부제'이고 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 바람직한 정책으로 기대를 걸어본다.

올해부터 정부가 시행에 들어간 '고향사랑기부제'는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를 맞은 지방의 열악한 재정 사정을 보완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제도다.

하는 일은 많지만 예산이 없어 어려웠던 지방자치단체에 단비와 같은 새 정책으로 전국 243개 지자체는 동시에 팔을 걷고 나섰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자신의 고향이나 응원하고 싶은 지방자치단체에 성금을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답례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연간 최대 기부액은 500만 원. 10만 원까지는 전액, 10만 원 초과 금액은 16.5% 세액이 공제된다. 지자체는 기부액의 30% 이내에서 지역특산물 등 답례품도 제공하도록 했다. 기부자는 세액공제에 답례품을 받아서 좋고, 지자체는 기부금으로 지역주민의 복리 증진에 이용할 수 있으니 속담처럼 ‘누이 좋고 매부 좋다’란 말이 적격이다

이 제도의 원조는 일본의 '고향 납세제(후루사토노제)'다. 2008년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도입했는데 2021년 기부 총액이 8천320억엔(약 8조원)에 달할 정도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고베시, 홋카이도 몬베쓰시, 후쿠오카현 몬베쓰시는 고향세 모금에 성공한 사례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4년 동안 청정 해안에 가리비를 양식했을 정도로 과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부금의 목적을 확실하게 알리고, 지자체가 기부자의 의견을 듣고 교류한 것도 성공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고향사랑기부제가 국민에게는 생소하다. 그래서 국내 지자체들이 홍보를 위해 고향 출신의 유명인들을 '1호 기부자'로 유치하는 등 아이디어를 만들고 있다. 충북에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고향 충북 음성군의 1호 기부자가 됐다. 강원도 춘천에서는 손흥민 선수가 500만 원을 고향에 기부했고, 박상돈 천안 시장은 고향인 세종시와 자치단체장으로 재임했던 아산‧보령‧서산시에 기부를 하였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은 고향인 광주 북구에 기부 참여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지자체들은 지역특산물뿐 아니라 템플 스테이, 한옥 숙박권, 산소 벌초 대행 등 다양한 체험·관광 상품도 선보이고 있다. 국민 모두에게는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다. 설과 추석 등 고향 행사를 앞두고 고향을 떠나 성공한 출향 인사들은 그리운 고향에 대한 애정을 고향사랑기부제에 동참하는 것이 어떨까?

고향 사랑 기부제의 성공을 통해 전국 어디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고향 주민들에게 희망을 듬뿍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고향 사랑 기부금 법에 따르면 강요는 금지되게 됐다. 답례품이 기부금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지자체로서는 기부를 받을 만한 질 좋은 답례품을 개발하는 것이 제일 큰 고민이었다.

일선 기초단체들은 중복되지 않도록 답례품을 추리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기부금을 낼 만한 향우회 인사들은 은퇴하고 경제 활동을 안 하는 분이 많아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어 "홍보도 어렵다”라고 털어놓았다.

때문에 답례품은 농축산물 외에 고향을 찾을 수 있는 관광지 입장권과 같은 서비스나 지역화폐 상품권 등으로 구성하기도 했다. 그러면 은퇴한 출향 인사들도 따져보면 손해가 아니니 자식들의 이름으로 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고향사랑기부제는 전국 지방자치단체마다 기부금 유치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역 특성에 따라 10종 안팎에서 80~90종까지 다양한 지자체들의 답례품이 홍수를 이뤄 흥미롭다. 지자체 간 과열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닌 듯하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에 활기를 불어넣고 도시민과 지방 간 연결고리가 된다는 점에서 고향사랑기부제의 정착과 확산이 기대된다. 사람은 자신이 6세까지 경험한 풍경을 죽을 때까지 그리워한다고 한다.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고향 사랑 기부제가 넓게 퍼져나가기를 바란다.